1885년 3월 영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정박해 있던 동양함대 소속 군함 6척과 상선 2척을 조선으로 출동시켜 조선 정부의 허가나 양해도 받지 않고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섬의 산꼭대기에 영국 국기를 달고, 병영과 포대를 구축했다. 항만 출입구에는 방어 시설을 만들고, 내항에는 목책을 설치했다. 섬의 이름을 해밀턴섬이라고 했다. 영국은 조선 정부에 거문도 점령을 알린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였다. 영국은 남하 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1860년 청나라와 북경 조약을 체결해 시베리아 지역을 차지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군항을 설치했다. 러시아는 1884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고 함경북도 북동단의 경흥을 조차지(租借地)로 얻은 뒤, 겨울에도 얼지 않은 부동항의 적격지로 동해항의 영흥만을 노리고 있었다. 태평양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에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 러시아 극동함대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위협하기 위해 조선 영토를 무단 점령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제법을 무시한 제국주의의 세력 싸움에 조선이 휘말린 셈이다. 이 무렵 러시아는 조선 정부 내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갑신정변 후에도 청나라의 노골적인 내정 간섭이 계속 되자 고종과 민비는 청나라에 거부감을 느꼈고, 러시아와 우호 강화로 이어졌다. 주한 러시아 공사가 조선 정부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고,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는 교관으로 러시아 인을 불러들이려는 시도도 있었다. 청나라가 추천한 외교 고문인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친러 정책을 권유해 해임됐고, 그 후임도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건의했다. 러시아의 조선 진출과 동해안 부동항의 확보 시도는 청나라는 물론 영국에게도 위협이었다. 영국은 1883년 조선과 조약을 체결할 당시 거문도에 눈독을 들여 거문도의 조차를 조선에 제의하기도 했다. 거문도는 대한 해협과 대마도 해협의 입구에 있고, 한일 해상 통로일 뿐 아니라, 러시아 동양함대의 길목에 해당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청나라 입장에서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청나라 이홍장이 3월 20일 거문도 사건과 관련해서 고종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이 섬은 조선의 영토에 속한 것으로, 영국이 오랫동안 빌리고 돌아가지 않으면서 사거나 조차지로 만들려고 한다면 단연코 경솔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섬은 동해의 요충지로서 중국 위해(웨이하이)의 지부(옌타이), 일본의 대마도, 조선의 부산 모두와 거리가 가깝습니다. 전하는 일정한 주견을 견지하여 그들의 많은 선물과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라며 영국의 철군을 요청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홍장은 조선이 거문도를 영국에게 빌려준다면 일본이 문제 삼을 것이고 러시아는 군사력으로 징벌하거나 조선의 다른 섬을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의 서신을 받은 후 조선은 일본과 독일, 미국 정부에 조선의 입장을 밝히는 서신을 보내는 한편 의정부 엄세영과 묄렌도르프를 거문도와 나가사키로 보내 거문도를 점령하게 된 경위를 묻고 철수 문제를 담판 짓도록 했다. 그러나 철수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자 김윤식은 4월 7일 북경 주재 영국 부영사에게 서신을 보내 '영국이 거문도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섬은 우리나라 영토에 속하므로 다른 나라에서 차지할 수 없다.'하며 세계 어느 나라의 공법에도 원래 이런 법은 없다. 빠른 철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조선 정부의 대응은 영국에 먹히지 않았다. 5월25일 고종이 대신들에게 "거문도를 다른 나라 사람이 제멋대로 차지하고 철수하지 않으니 개탄할 일"이라 하자, 영의정 심순택은 "서로 버티다 보니 그렇다고 들었는데, 언제 철수할지 알 수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1887년 영국은 러시아와의 분쟁이 해결될 즈음 , '조선의 어느 곳도 점유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받아낸 뒤 22개월 만에 스스로 철수한다. 조선은 그해 7월 거문도를 남해 연안의 요충지라 하여 거문진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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