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삼국 중 가장 늦은 527년이었다. 당시 신라는 고대 국가로의 체계를 갖춰 가는 과정에서 불교를 도입하려는 왕과 토착 신앙에 기반을 둔 귀족 세력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불교 공인에 있어 귀족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차돈이 순교하였고, 이로써 법흥왕은 불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고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아침에 불법이 행해지면 불교가 일어나고 성주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소신의 목을 베어 만민을 굴복하게 하십시오.
527년, 이차돈은 신라의 23대 법흥왕에게 이 같은 말을 남기고 처형된다. 당시 이차돈의 목을 베자 목에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하더니 꽃비가 내렸다고 <삼국유사>에 쓰여있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는 마침내 불교를 받아들였다. 법흥왕 14년, 이차돈 나이 26세 때의 일이다. 당시 이차돈의 순교는 종교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춰나가는 과정에서 국왕과 귀족 간의 치열한 정치적, 사상적 주도권 다툼이 깔려 있었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은 국법과 불법을 통해 강력한 국왕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불교 수용이 150년이나 늦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인 372년, 백제는 침류왕 원년에 각각 불교를 공인했다. 신라도 이차돈의 순교 이전부터 불교가 유입되었지만, 귀족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국가의 공인을 받지 못했다. 예부터 신라에서는 각 부족 출신과 이를 이끄는 귀족들이 건국 당시의 민간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무격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특히 귀족들은 민간 토착 신앙의 토대인 천신과 지신을 자신들의 직계조상으로 섬기며 백성들 사이에서 굳건한 위치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은 선진 종교인 불교를 수용하면 자신들의 정치적 존립 기반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차돈이 절을 지으려던 천경림은 천신이 내려와 지신과 결합한 장소로 신성시된 곳이었다. 반면 국왕으로서 토착 신앙에 뿌리를 둔 귀족 세력의 기득권을 누르지 않고는 고대 국가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통치 행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영토 확장과 각종 제도의 정비로 신라 사회가 민간 신앙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급속한 변화를 겪자 이를 헤쳐 나갈 고등 종교와 사상에 대한 갈증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법흥왕이 불교를 일으키기 위해 미리 이차돈과 일을 도모했다는 기록이 이 같은 시대 분위기를 나타낸다. 성품이 곧고 불교에 심취한 이차돈과 나라를 바로 세우길 염원하는 법흥왕의 마음이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신라뿐만 아니라,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국왕이 중심이 돼 불교를 적극 수용했다는 점에서 삼국 모두 중앙집권 국가에 걸맞은 국왕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써 불교 신앙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차돈이 순교한 뒤 법흥왕은 흥륜사라는 절을 지었고, 진흥왕에게 왕위를 넘긴 다음에 스스로 승려가 되었다. 순교 당시 이차돈의 잘린 머리가 하늘에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자추사라는 절을 지었다. 현재 경주 동천동에 있는 백률사가 그 절로 추정한다. 신라는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확립된다. 국왕이 다스리는 땅은 불국토이며, 모든 부족은 부처님의 제자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제 국왕은 귀족 세력이 넘볼 수 없는 초월적이고 신성한 권리를 지닌 존재가 된 것이다. 한편 법흥왕은 불교가 공인되기 전인 517년에 병부를 설치해 군사권을 장악했으며, 520년에는 국왕 중심의 국가 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율령을 반포했다. 불교 공인 4년 뒤인 531년 상대등을 설치했다. 상대등은 귀족들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의결하는 화백 회의의 의장이며, 국왕이 직접 임명했다. 법흥왕은 532년 경남 김해 지역에 있던 금관가야를 복속하고 536년 독자적인 연호인 ‘건원’을 사용했다. 이는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초창기에 국왕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수용된 불교는 귀족들에 이어 서민들의 신앙과 실생활에까지 널리 확산하면서 고대 사회의 면모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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