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조약1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1868년 메이지 정부는 조선에 여러 차례 교섭을 요구해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거부로 좌절됐다. 이유는 일본이 보낸 외교문서가 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막부 때와는 달리 '황제' 등의 용어를 사용해 조선의 상국처럼 행세하려 했다는 것이 거부한 이유이다. 그러나 대원군이 물러나자 사정은 달라졌다. 문호 개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고종과 민비(명성 황후) 세력에 의해 일본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일본이 외무대승 모리야마를 앞장세워 1874년 11월에 조선과 국교 수립을 요청한다. 일본은 이번도 '대일본', '황상' 등 조선을 자극하는 문구를 사용한다. 당시에 조선에서는 일본 내부의 정한론(조선에 대한 침략론)을 경계하는 분위기여서 모리야마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리야마는 민씨 세력이 쇄국파를 누르.. 2023. 11.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