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왕조 국가에서는 적장자의 왕위 계승이 원칙이었다. 문종은 최초의 조선 적장자 출신 왕이다. 선대왕 정종, 태종, 세종은 모두 적자이기는 했으나 장자는 아니었다.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 씨 사이의 8남 2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나, 1421년에 세자로 책봉된 뒤 세종 말년에 부왕을 대신하여 왕세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세종이 죽은 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가 37세였으므로 29년이나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셈이다.
문종은 세자 시절 1427년 (세종 9) 김오문의 딸 휘빈 김 씨와 혼인했다. 문종은 4살 연상인 휘빈 김씨를 가까이하지 않았으나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으려 했다. 세종은 김 씨를 친정으로 쫓아냈다. 후에 문종은 1429년(세종 11)에 봉여의 딸을 새 세자빈으로 맞았으나 순빈 봉씨 마저 가까히 하지 않았다. 순빈 봉씨도 휘빈 김씨와 같은 이유로 1436년(세종 18)에 폐출되었다. 문종의 가정사는 순탄치 않았다. 이후 문종은 새로 세자빈을 간택하지 않고 세 명의 소실 중에서 권 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하여 권 씨는 문종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낳았다 첫째 딸이 경혜공주, 아들이 노산군이다.
문종은 성품이 인자하고 총명했으며 사리에도 밝아서, 세종은 이런 문종을 신임했다. 세종 말년에 건강이 나빠지자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정부서사제로 바꾼 데 이어 첨사원을 만들어 문종은 1445년(세종 27)부터 섭정을 시작하였다. 문종은 세종이 죽을 때까지 섭정을 계속하다가 그대로 즉위했다. 문종은 섭정하는 동안 실제 정치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세자 시절부터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문종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가장 발달시킨 게 바로 군사 부문이다. 경연 때 병서를 강연하자고 했을 정도로 조선 왕조에 유례가 없는 왕이었다.
십사의 중앙군제는 1418년(태종 18)에 십이사(세종 4)에서 십사, 1445년 다시 십이사로 변화하였다. 그러다 문종이 즉위한 뒤 1451년(문종 1)에 오사로 바뀌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사는 2개의 사가 근무하면 3개의 사는 비번으로 3일마다 교대로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각자의 지방으로 내려가서 지방군 체제에 속하게 해 전투력의 손실을 최소화했다. 오사는 1457년(세조 3)에 오위로 개편되었는데, 조직과 운영은 오사 때와 동일 하였다. 오위의 최고 사령 기관인 오위도총부 아래 총 25부가 있고, 가 부에는 전국의 지방군인 진관 군사가 있었다. 이는 극가 비상사태가 있을 때 지방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도록 편성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경국대전'이 편찬될 때 그대로 반영되었다. 나아가 문종은 직접 화차를 개발해 그 운영법을 정하고 하였다. 화차를 100발로 추가시켰으며 평지에서는 2명, 오르막길에서는 4명이 운영하게 하였으며 장전에서 발사 과정 그리고 불발탄 처리 방법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 화차는 후기에 성종 조에 "나라에서 화차를 만들 때는 다 이유가 있으니 잘 쓰도록 하라."는 말이 나올 만큼 큰 활약을 한다. 기사를 찾아서 읽어보면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격을 해서 타격을 줄 경우에는 당시로서는 핵폭탄 급이었고, 설령 맞추지 못한다고 해도 그 소리와 빛 때문에 여진족들이도망가는데 급급했다. 농업과 과학 등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장영실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 측우기의 제작 아이디어도 사실 세자 시절의 문종에게서 나왔다. 가뭄이 들자 땅을 파 젖은 깊이를 쟀는데 부정확해지자 구리 통을 만들어 비 온 양을 쟀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규격과 재질을 명확히 지시했을 뿐 아니라, 지방에서 사용할 측우기는 값비싼 구리가 아닌 도자기 등으로 제작해도 된다는 지침도 내려 주었다고 한다. 문종은 왕위에 오른 지 2년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짧은 기간 많은 일을 했다. 오위와 진법을 만들었으며 여러 군데를 정리해 중앙과 지방의 군대가 정비되고 국경을 비롯해 전국 주요 읍성을 개축해 외부 침략에 대비했다. 세종 대에 이어 편찬 사업도 활발히 했는데 163권에 이르는 '세종실록'을 편찬했다. 문종은 부왕 세종의 삼년상을 치르면서 병이 들었는데, 몸이 편안하지 못한 와중에도 나라를 근심하며 정사를 부지런히 돌봤다. 그러던 중 문종은 1452년 5월 14일 죽는다. 금욕 생활을 했음에도 종기로 고생했던 문종은 재위 기간 중 건강이 나빠져 향년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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